구글의 픽셀폰, 애플의 헤드폰

애플이 최근 발매한 아이폰 7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부분은 헤드폰 잭이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로 인해 새 헤드폰을 사거나 어댑터를 써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전반적인 반응은 부정적이다. 한편, 구글은 뜻밖에도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생산을 감독한 픽셀폰이라는 하드웨어를 내놓았다. 픽셀폰의 성능은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으나 소프트웨어 회사로 알려진 구글이 스마트폰을 직접 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혹 섞인 시선이 모여지고 있다.

애플의 헤드폰 잭 제거와 구글의 픽셀폰 제작은 일견 전혀 다른 성격의 일들로 보이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삼성을 비롯한 다수의 회사가 좋은 폰을 제작하는 순조로운 상황에서 생산 경험도 적고 유통 채널, 마케팅에도 약점이 있는 구글이 협력 회사들의 심기를 건드려 가면서 경쟁폰을 발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커 보이는 결정이다. 한편, 애플 역시 헤드폰 잭 제거로 얻을 것은 거의 없다. 아이폰이 더 얇아진 것도 아니고 딱히 그 자리에 특별한 기능이 추가되지도 않았다. 무선 이어폰을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비아냥까지 듣지만, 실질적으로 헤드폰잭 제거로 인한 매출 하락이 무선 이어폰 매출로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클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결정이다.

왜 이 두 회사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을 했을까? 그것은 스마트폰의 시대가 끝나가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험을 감수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대담한 결정이었다는 점이 두 번째 공통점이다.

앞으로의 시대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시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막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고 기술력을 갖춘 구글은 인공지능에서도 선두 주자다. 문제는 구글의 주수익 모델이 검색을 통한 광고라는 점이다. 검색력이 좋아질수록 검색 광고 수익 모델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인공지능이 더욱 발달해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바로 제공해 준다면 검색하는 일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즉 뛰어난 인공지능은 검색 광고 시장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고 여기에 검색과 인공지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글의 딜레마가 있다.

소프트웨어로 돈을 버는 구글과 반대로 애플은 하드웨어로 돈을 번다. 애플의 문제는 현재 주류 하드웨어, 즉 스마트폰 시장이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시대의 기기는 스마트폰보다는 웨어러블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고 걸맞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애플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위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새 하드웨어 포맷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아이폰을 내려놓아야 한다. 딜레마다.

구글의 픽셀폰, 아이폰의 헤드폰잭 제거는 이런 딜레마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픽셀폰을 두고 구글이 직접 아이폰과 경쟁하느니 삼성 등의 제조사를 배신한 것이라느니 의견이 많지만, 그 함의를 볼 때 픽셀폰은 폰일 필요가 없는 제품이다. 픽셀폰이 안드로이드 폰이지만 구글의 안드로이드 사업부 소속이 아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전까지 하드웨어에 상관없이 검색에 구글이 쓰이면 그만이었다면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시대에는 어떤 하드웨어를 쓰느냐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래서 구글은 사용자에게 구글의 하드웨어를 직접 제공함으로써 검색을 쓰지 않아도 구글 생태계 안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픽셀폰의 목적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팔고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사용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매개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우연히(!) 스마트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안경이 되든 목걸이가 되든 옷이 되든 그 모습은 기술 발전에 따라 거침없이 바뀌어갈 것이다. 구글은 경험과 습관을 제공하면서 광고와 스마트폰 이후의 시장을 준비하는 것이고 스마트폰을 직접 만듦으로써 스마트폰 시장을 떠나는 셈이다. 그래서 픽셀폰은 스마트폰과의 결별인 동시에 애플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이자 삼성에게 보내는 이별 통고이기도 하다

애플이 헤드폰 잭을 없앤 이유는 아이폰 사용자를 인공지능 기기로 자연스레 이끌려는데 있다. 애플워치가 그 첫 시도였다면, 이번에 발표한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 에어파드는 보다 본격화된 시도이다. 에어파드는 이어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핵심은 에어파드를 터치함으로써 시리와 상호작용 하는 부분에 있다. 음성으로 컴퓨터와 소통하고 애플이 제공하는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사용하는 습관을 붙여 포스트 아이폰 시대에도 애플 생태계를 떠나지 않게 붙잡아두려는 속셈이다. 애플 경영진은 헤드폰 잭을 없앤 결정을용기라고 불러 냉소를 사기도 했지만, 그 바탕에 있었던 것이 아이폰을 희생하면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전략적 사고였다면 용기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애플과 구글만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벌써부터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고 삼성도 Viv라는 인공지능 기업을 인수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 불러온 거대 시장에서 기술과 전략이 총동원되어 벌이는 경쟁은 인류 지성의 정수를 보는 듯해 짜릿하다.


* 이 글의 기본 아이디어는 벤 탐슨의 “Google and the Limits of Strategy”에서 얻었습니다.  https://stratechery.com/2016/google-and-the-limits-of-strategy/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IT 업계

난세일수록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횡행하듯, 혁신이 자주 일어나고 그 속도도 빠른 IT 산업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자주 목격된다. 몇몇 예를 살펴보자.

컴캐스트와 넷플릭스

미국 최대의 케이블 사업자이자 NBC를 소유하고 있는 컴캐스트에게 넷플릭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우선적으로 컴캐스트의 VOD 비즈니스와 경쟁 구도를 이루지만 나아가 시청자가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 동안 컴캐스트의 케이블 방송을 보지 않게 된다는 점은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또한, 넷플릭스로 발생하는 대량의 인터넷 트래픽이 컴캐스트의 인터넷 사업에 부담을 주기도 했다. 이에 컴캐스트는 이중 과금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넷플릭스에게 별도의 망 사용료를 청구하고 넷플릭스는 컴캐스트를 망중립성 위반으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양사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러던 컴캐스트가 최근 자사 셋탑박스에 넷플릭스 앱의 설치를 허용하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결정의 배경에는 애플 티비나 크롬 캐스트, 게임 콘솔 등을 통해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컴캐스트의 셋탑박스를 아예 건너뛰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시청자에게 티비의 외부입력 소스를 바꾸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인데 넷플릭스를 탑재하는 것이 컴캐스트의 셋탑박스가 중요한 HDMI1 자리를 계속 차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두 회사는 오랜만에 사이좋은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허츠와 우버

미국 최대의 렌터카 사업자 허츠는 우버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다. 번거롭고 비싼 렌터카 대비 싸고 편한 우버는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Certify가 발표한 최근 2년 사이 미국 비즈니스맨들의 출장 비용 청구서 변화를 보면 교통비 항목에서 렌터카는 55%에서 40%로 감소, 택시는 37%에서 14%로 폭락한 반면 우버 등의 공유 서비스는 8%에서 46%로 대폭 증가했다. 이렇게 우버와 경쟁하는 허츠가 최근 우버 운전자를 위한 특별 저가 렌탈 플랜을 내놓았다. 매주 $180에 차를 빌려주겠다는 것인데 이로써 허츠는 매출 증대를, 우버는 공급량 증대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허츠가 보유한 차량의 평균 감가상각액은 매주 $72 정도라고 하니 우버 운전자에게 매주 $180에 차량을 렌트하는 건 허츠로선 꽤 괜찮은 장사이기는 하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우버 등의 공유 서비스가 렌터카 업체를 고사시킬 수 있다는 점인데 허츠 경영진이 이를 알면서도 적과의 동침을 거부할 수 없다는 부분이 무섭다.

페이스북과 언론사들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산업 부문을 대 보라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언론이라 하겠다. 한때 구글이나 야후, 네이버 같은 검색, 포털 서비스 종속으로 고민했던 언론사들은 요사이 페이스북, 스냅챗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더욱 높은 강도로 기대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한 전파력이 기존의 종이 매체, 자사 홈페이지에 기사를 올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폭발성을 보이는 상황이라 소셜 네트워크를 배제하고 언론사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종속의 심화가 결국에는 언론사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독이 든 성배라 하겠다.

디디추싱과 우버 차이나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우버가 끝내 못 이긴 시장이 중국이다. 중국은 인구와 자본이 많기도 하지만 자가용 보급률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업자에게 금광과 같은 시장이고 우버 차이나와 디디추싱은 맹렬한 경쟁을 펼쳐왔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특수성상 중국은 애초부터 우버가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시장이었다. 결국 우버는 디디추싱이 우버 차이나를 인수하는 형태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언뜻 보면 우버의 패배로 보이지만 인수 과정을 통해 디디추싱의 주식을 17.7%나 갖게 되니 우버에게는 상당히 흡족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디디추싱은 차량 공유 사업 이전에 차량 호출 사업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회사라는 것이다. 디디추싱은 알리바바가 투자한 콰이디다처, 텐센트가 투자한 디디다처 두 회사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회사인데 두 회사는 공룡 모기업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극심한 출혈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합병을 선언하는 극적인 전환을 이루어냈다. 우버 차이나 인수에는 디디추싱의 이러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써 우버는 힘겨운 시장에서 실속을 챙기며 철수를, 디디추싱은 중국 차량 공유 시장에서 독점의 위치를 이뤄내게 되었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숨 가쁜 변화는 다이내믹하고 생동감 넘치는 업계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가는 파트너쉽도 있겠지만 이런 변화로 생로를 찾을 만큼 지형이 변화무쌍하고 기회가 많다는 쪽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변화가 적은 국내 IT 업계에서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일단 물은 고이기보다 흘러야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니 말이다.

포켓몬 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전 세계가 포켓몬 고 열풍이다. 게임 콘솔 안의 세상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 이 게임은 문화 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정식 서비스가 되지 않는 한국에서도 유일하게 서비스가 가능한 속초 지역을 찾아가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을 정도다. 이러한 열성 팬들의 행보는 그 자체로 뉴스가 되어 포켓몬 고에 대한 관심을 확대 재생산한다.

한국이 막연함 속의 열풍이라면 미국은 광풍이라 할만하다. 거리와 공원이 포켓몬을 잡는 이들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이들끼리 자연스레 어울려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포켓몬 사냥을 한다. 야외로 나와야 하고 일정 거리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게임의 특성상 건강에도 좋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많은 이들이 같은 행동을 하며 몰려다니는 모습은 지구 규모의 플래쉬몹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게임 발매와 함께 닌텐도의 주가는 무섭게 치솟아 열흘여 만에 원화로 25조 정도가 오르고 시총을 2배로 만들었다. 심지어 일본 맥도널즈가 닌텐도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게임의 활동 무대로 쓴다는 소식이 나가자마자 일본 맥도널즈의 주가가 25% 가까이 급등했다.
한국 정부도 자극을 받아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으로 게임 산업 육성책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 정신 건강을 좀먹고 중독자를 양성하는 질병 취급을 받던 게임이 갑자기 미래의 희망이 된 느낌이라 어리둥절하다. 언제나 정부가 산업 발전을 선도하지는 못하고 화제가 된 이후에 뒷북을 울리고 숟가락을 얹는 느낌이라 아쉽다.

포켓몬 고 인기의 이유를 짚어보자면 무엇보다도 닌텐도가 독점적으로 소유한 포켓몬이라는 지식재산권(IP)을 들어야 할 것이다. 경영 부진에도 불구하고 뚝심인지 아집인지 스마트폰용 게임 출시를 거부해 온 닌텐도가 얼마 전부터 슬그머니 관심을 보이더니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진출한 첫 게임이 포켓몬 고다. 솔직히 게임 자체의 완성도나 품질이 높지는 않다. 버그도 많고 불안한 서버 등을 지적하는 불만도 높다. 포켓몬이 아닌 다른 콘텐츠였다면 아예 인기를 끌지도 못하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켓몬이라는 IP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극복해 버렸다. 포켓몬은 약 20년 전 탄생해 이후 끊이지 않는 인기를 누려왔다. 게임으로도 2억 카피 이상이 팔렸고 애니메이션, 카드, 캐릭터 상품화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천문학적이다. 지금 30대까지의 사람들은 포켓몬과 함께 자라왔다고 할 수 있다. 유소년 시절을 함께 보낸 포켓몬이 현실 세계에 나타났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포켓몬 고가 아이들뿐 아니라 청, 장년층에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게임이 흥미롭고 쉽다는 이유도 들 수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에 쉬운 조작법과 증강 현실(AR), 그리고 친근한 캐릭터로 흥미를 유발한다. 거기에 덧붙여 닌텐도의 마케팅 전략은 상당히 영민한데 다른 게임과 달리 게임 내에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포켓몬을 안 해 본 사람이 진행 중 벽에 부딪힐만한데도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하게끔 유도함으로써 자연스레 바이럴을 생성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배경에는 게임이 실내가 아닌 실외로 나와 사람들과 대면하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사람이 모이면 포켓몬을 잘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도사리고 있다.
게임을 개발한 나이앤틱 랩이 이 방면에 축적된 경험을 지닌 회사라는 것도 성공 원인이다. 지역 정보와 AR을 게임에 녹여낸 솜씨는 나이앤틱이 이전에 잉그레스라는 비슷한 컨셉의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혹자는 포켓몬 고가 잉그레스에 포켓몬 테마를 씌운 정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포켓몬 고의 개발 기간은 이 정도 규모의 게임엔 터무니없이 짧은 몇 개월에 불과하다.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 혹은 가상현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받는데 사실 포켓몬 고의 AR은 핵심보다는 양념에 가까운 수준이기는 하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을 떠나 이 게임의 의의는 수많은 대중에게 AR을 경험하게 해 줬다는 것, 그래서 본격적인 AR 도입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AR이나 VR이 크게 발전한다면 포켓몬 고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켓몬 고의 성공을 AR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닌텐도가 종이에 포켓몬 그림을 프린트해 보물찾기를 시켰어도 큰 인기를 얻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포켓몬 고의 성공은 90% 이상이 IP의 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테러와 총기 난사와 쿠데타와 난민과 브렉시트와 양극화와 경제 위기로 온 세계가 난리인 통에 잠시나마 근심을 잊고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포켓몬 고의 등장은 고마운 일이다. 포켓몬 고 관련 소식을 전하는 한 트위터 계정은 이런 슬로건을 달고 있다. “이봐요. 수많은 피카츄들이 주위를 뛰어다니는 이 상황에 증오 같은 걸 가질 시간이 어디 있죠?”

한국인들이 속초 외의 지역에서도 증오를 덜고 포켓몬 사냥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콘텐츠 홍수 시대다. 볼 것, 들을 것은 끝도 없이 공급되고 모두가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잠시의 짬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쉴 새 없이 콘텐츠를 소비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정신이 없다. 네이버,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웹툰, 동영상,…

인터넷이 공간적 제한을 뛰어넘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면 모바일은 그 정보를 항상 옆에 있는 도구를 통해 언제나 접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파괴적인 강점이다. 이러한 접근성은 자투리 잉여 시간을 말살시켜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라. 지하철 안에서, 길을 걸으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들으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계산대에서 줄을 설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동할 때, 다들 휴대폰을 꺼내 든다. 단 몇 초의 시간만 주어지면 일단 스크린을 켜고 뭐라도 들여다본다. 목적이 있어 휴대폰을 켜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켜게 된다. 예전에는 명상하고 공상하고 주위를 관찰하던 시간이 이제는 소비로 가득 차 버렸다. 이는 휴대폰을 곁에 두지 않으면 불안감이나 결핍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고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도 만들어내고 있다. 2시간 동안 휴대폰을 못 들여다보는 걸 참을 수 없어 극장에 못 간다는 이야기가 들릴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흔히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낭비되던 잉여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다고, 잠시의 낭비도 허용치 않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그래서 우리의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명상, 공상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의 소멸은 사고와 창조와 혁신의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인간을 끝없이 제공되는 콘텐츠 스트림의 노예로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강박 하에 최소한의 나를 위한 시간까지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상에서 가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에는 돈, 시간, 관심 (attention), 개인 정보의 4가지가 있다고 한다. 네 가지 모두 유한한 자원이지만 그 가치가 가장 지불 주체에 영향을 덜 받고 공평한 자원은 시간일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콘텐츠의 주요한 소비 공간으로 자리 잡고 무한에 가까운 콘텐츠가 접근 가능해진 지금, 콘텐츠 소비자의 시간을 얻으려는 싸움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 싸움은 분야별 경계를 넘어선 전방위적인 싸움이다.
콘텐츠의 공급이 제한적이었던 예전의 콘텐츠 시장은 같은 분야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졌다.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의 경쟁 상대는 다른 출판사였고, 가수의 경쟁 상대는 다른 가수, 티비 드라마의 경쟁 상대는 다른 드라마, 게임의 경쟁 상대는 다른 게임, 이런 식이었다. 이러한 시장 구도는 인터넷, 특히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크게 바뀌었다. 콘텐츠가 무한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희소한 자원은 소비자의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해도 절대적 시간이 없으면 소비할 수가 없다. 모바일 접근성은 시간 소비의 단위를 초 단위로 나누어 버렸고 짧아진 집중력으로 인해 책, 영화와 같은 긴 시간이 필요한 콘텐츠 공급자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같은 업종끼리 경쟁했다면 이제는 모든 업종이 시간이라는 유한 자원을 놓고 경쟁한다. 돈이 있고 관심이 있는 소비자도 시간이 없다. 거기에 집중과 독식이 심화되었다. 모바일폰의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모바일의 강자들이 콘텐츠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졌다. 페이스북, 위챗, 스냅챗 등은 이미 메신저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넘어 미디어 사업체라 불러도 될 정도다. 콘텐츠를 배급하는 역할을 넘어 이제는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기까지 한다. 전통적 콘텐츠 제작자와 전통적 배급 채널이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고 이럴수록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고자 하는 노력은 가열차진다. 콘텐츠 사업자는 사업자대로 어렵고 소비자는 콘텐츠 홍수로 인한 스트레스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사고와 창의의 시간은 소멸된다.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무료함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 생길 때, 따분함이나 어색함을 느낄 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꼭 샤워를 할 때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럴 때면 아이디어가 사라질까 두려워 젖은 채로 뛰쳐나와 메모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샤워가 아이디어를 촉진한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생긴 잉여 시간, 스마트폰에서의 자유로움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의 시간은 소중하고 이 시간을 얻어 가기 위해 온갖 매체들이 호소하고 있다. 그럴수록 이 소중한 자원을 아껴 나를 위해 쓰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잉여 시간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제 역시 샤워 중에 떠올랐음을 고백해야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한국을 망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한국형 OS, 한국형 유투브, 한국형 알파고 등 IT 업계에서도 심심찮게 들리고 정부의 슬로건에도 자주 보인다. 모르긴 해도, 한국인이 쓰기에 편리하고 한국의 기술로 개발하고 무언가 한국적인 요소를 넣은 것을 만들자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적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상식적으로도 소수를 대표하는 특성이 다수를 대표할 리가 없다. 기껏해야 우리가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자는 맥락일 텐데 수사 수준에서 끝날 말을 액면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위 명제는 존재감과 경쟁력이 미미한 나라가 특장점 하나에 집중하여 어필할 때나 맞는 전략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우리의 경제 규모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바뀌었다. 게다가 이제는 앱 하나를 수십 억 명이 동시에 쓰는 시대다. 천문학적인 자본이 솔루션 하나에 쏟아지고 사용자의 수와 배경이 극도로 다양하고 넓어지면서 보편적이고 비차별적인 특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먹힐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거대한 솔루션과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다름 아닌 표준화이다. 인터넷은 TCP/IP라는 표준이 받아들여지면서 급격히 성장해 세계를 묶었다. 그 인터넷 위에 웹 표준이 자리 잡으면서 브라우저만 깔면 소통이 가능해졌다. 보안화 표준에 의해 온라인 상거래가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표준화가 언어, 국가, 문화적 차이를 아우르는 거대 비즈니스와 시장을 형성했다. 표준화에 역행하는 우리만의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표준화를 거부하고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댓가는 열악한 품질과 시장 질서의 왜곡, 나아가서는 IT 쇄국으로까지 이어진다. 한국화를 위해 멀쩡한 외국 제품의 아이디어만 따 와 열등한 제품을 굳이 만든다든지, 외국 제품을 규제로 만신창이로 만들어 국내 업체에 부전승을 안겨준다든지,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추가한다든지 등이 그 예이다. 표준화를 따르기를 거부함이 단기적, 지엽적 이익을 창출하기는 한다. 웹의 기본 정신인 정보의 흐름을 필사적으로 막고 국민을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려 애쓴 모 포탈은 국내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 나가면 쓸 데가 없어지는 각종 보안 기술 업체들, 실명 인증 솔루션 업체들, 성능이 떨어지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안티바이러스, 워드프로세서 역시 국내에선 좋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 반대급부로 국내 소비자는 떨어지는 서비스와 품질을 감내해야 했다. 아울러 국내 서비스에 가둬지면서 외국의 좋은 품질의 정보와 지식에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최신 트렌드나 변화를 접하는 속도도 느려졌다. 한편으로 국내 시장에서 편한 장사를 하던 기업은 어느 순간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해외 시장에 나아갈 기술과 경험 역시 쌓지 못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한국 국민과 기업을 멍들게 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것이 여전히 강조되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철학적, 문화적인 이유다. 단일민족이라 교육받고 경쟁을 강조 받으며 자라온 우리는 유독 다양성과 다원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약하다. 너와 나, 아군과 적군을 명확하게 가르는 것을 편해 한다. 세계와 어울리는 것보다는 우리의 것을 인정받는 것을 우선시한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못살던 시절의 잔재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칭찬받았다고 흡족해할 시대가 가고 이젠 발돋움해 리더가 되어야 할 상황에서도 승리를 통한 자아도취와 유아기적 인정받기 욕구를 극복하지 못한다.

둘째, 경제적 이유다. 표준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임의적, 미봉적 솔루션의 양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솔루션 하나하나에 이권이 걸린다. 한국화를 외치고 문을 닫아 버린 후 내수 시장 독과점을 즐기려 한다. 닫힌 시장이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이유가 없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들여와 조금 바꿔 돈을 버는 쪽이 쉽다. 오래 쓰이지도 못하고 뛰어나지도 못한 솔루션에 정부와 국민의 돈이 낭비된다.

셋째, 정치적 이유다. 공무원이 많아질수록 전시 행정의 유혹은 커진다. 예산을 남김없이 쓰고 생색을 내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기획과 집행을 감행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만만한 것이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는 일이다. 외국 기술에 승리하는 한국, 외국 대자본이나 첨단 기술에도 정복당하지 않은 한국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선전 효과도 크다. 잘 되면 대박, 안 되면 본전이라는 정책의 성격상 혁신보다 무탈을 선호하게 되는 공무원의 생리에도 잘 맞는다.

문제는 이러한 IT 쇄국정책이 구한말의 반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홍수에 둑이 무너지듯 언젠가는 한국적인 것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고 우리 국민과 기업이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구한말, 선교사들이 성경을 들고 들어온 것이 의도치 않게 제국주의 침략의 시초가 되었다면 21세기의 위기는 페이스북이 깔린 스마트폰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물 안에서 아무리 행복한 개구리도 우물 속으로 흙더미가 쏟아질 상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한다. 한국적인 것을 접고 적극적으로 세계 표준에 맞춘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장려해야 할 시점이다.

앤디 그로브와 아메리칸 드림

지난 3월 21일,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가 세상을 떠났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그로브는 실리콘 밸리에서 매우 존경받는 비즈니스 리더였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세계 대전과 동유럽 공산화, 실리콘 밸리의 발전과 정보 혁명 등 현대사를 정면으로 관통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영화처럼 파란만장하다.

그로브는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나치와 소련 공산당의 억압을 연달아 받으면서 험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가족은 나치가 득세할 때에는 수용소행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숨어 살았고 소련 공산 정권이 권력을 잡자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그로브는 4살 때 앓은 성홍열로 청력을 상당 부분 영구적으로 잃었다. 저널리스트를 꿈꿨으나 좌절을 겪던 그로브는 소련군의 헝가리인 학살을 피해 홀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성을 Grof에서 미국식 Grove로 고친 후 영어를 독학하며 학비가 무료인 뉴욕 시립대에서 공부를 시작해 이후 버클리 대학에서 화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에 입사했고 이듬해, 고든 무어와 밥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창업한다. 인텔의 초기 주 제품은 메모리 칩이었다. 컴퓨터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메모리 칩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저가를 앞세운 일본 업체의 도전이 거세지자 프로세서 칩으로 주력 상품을 바꾸어 풍랑을 이겨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무어는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데 이는 집적소자에 올라가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2년마다 2배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현실로 이루어져 왔지만 사실 상당 기간, 프로세서의 생산이 인텔에 의해 거의 독점되었음을 생각하면 법칙이라기보다는 계획에 가깝다. 현장에서 그 계획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이 그로브이니 무어의 법칙보다는 “그로브의 실행력”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그는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주력 제품을 시기적절하게 메모리 칩에서 프로세서로의 전환한 것 외에도 최고 고객 IBM이 안정적 부품 공급을 위해 경쟁 회사에게 기술을 전수할 것을 요구해 오자 영리한 협상을 통해 피해감으로써 프로세서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굳힌 것, 컴퓨터의 외부에 “인텔 인사이드”란 로고를 사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각인시킨 것, 그리고 프로세서 시장에도 저가를 앞세운 경쟁자들이 생겨나자 수익률 감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저가형 셀러론 프로세서를 만들어 시장을 장악해 버린 것 등은 유명한 일화들이다. 그로브가 CEO로 재직한 약 10년간 인텔의 매출은 19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수익은 2.5억 달러에서 69억 달러로 크게 올랐다. 그로브는 1997년, 타임지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한다.

멈추는 순간 죽는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던 그로브는 까다롭고 집착이 강하며 저돌적인 경영 스타일로 포천 지에 의해 가장 함께 일하기 힘든 보스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평등을 강조해 임원 사무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직위를 가리지 않는 토론을 장려하는 등 친근감을 주는 면도 있었던 경영자였다. 실제로 그로브와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터프한 경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고의 멘토와 리더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미친 듯이 일하고 일한 만큼 성과를 내던 성취감이 크다고 한다. 수평적 조직 관계, 열띤 토론, 스톡옵션 등을 채용한 경영 문화는 다른 실리콘 밸리 회사들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로브는 또한 아직 받지 않은 은혜를 먼저 갚는다는 뜻의 Paying it forward라는 개념을 실천한 사람이다. 조언을 구하는 젊은 창업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창업자들 중에는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들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로브는 인텔뿐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된다.

그로브의 인생을 조명하며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미국의 힘이다. 최근 아메리칸 드림이 옛말이 되었다는 푸념도 많이 들리지만, 재능과 노력만으로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면 여전히 미국이 첫 손에 꼽힌다.
IT 업계만 보아도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에서, 야후의 제리 양은 대만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일란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와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는 인도 태생이다. 스티브 잡스의 생부는 시리아 사람이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의 양부는 쿠바 출신이다. 이민 1세대, 혹은 2세대인 이들이 미국 경제와 미국민들에게 공헌한 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인재들을 모여들게 한 힘, 혹은 이들을 인재로 길러낸 힘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와 우수한 교육에서 나온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배경에 상관없이 교육과 창업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 성공의 비결을 서로 나누고 이끌어 주고 성공에 따라오는 경제적, 사회적 보상을 목표가 아닌 결과로 여기는 문화, 여기에서 창의력과 역동성이 나오고 그 결과, 미국은 최고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60년 전, 생존을 위해 전 재산 20달러를 들고 국경을 넘은 헝가리 난민 청년을 미국은 받아주고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그 청년은 수십 조 가치의 회사와 IT 산업의 두뇌를 일궈 냄으로써 미국과 인류에 보답하였다. 앤디 그로브의 명복을 빈다.

알파고와 인류의 미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알파고의 완승으로 돌아가면서 말들이 무성하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다. 기계가 인간보다 잘하는 분야가 하나둘인가. 바둑이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고 해도 알파고는 한 기능에만 집중해 특화되고 반복 훈련된 결과물이니 그 기능에 있어 인간이 뒤떨어졌다고 해서 너무 비관론에 빠지는 건 자동차가 사람보다 빨리 달렸다고 낙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니만큼 누가 이기든 인간의 승리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도 이번 대국이 크게 화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주로 블루칼라의 일들을 대신 한다고 믿어온 기계가 이제 화이트칼라의 업무까지 본격적으로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 나게 전달해 준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의 인간 노동력 대체

사실 기계의 화이트칼라 업무 대체는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단순, 반복적인 일에서 시작되어 창의적인 일로 여겨지던 기사 작성 같은 일을 거쳐 좀 더 복잡하고 전문성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직업들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는 의사, 법률가, 회계사 같은 직업들은 기계가 대체하기 쉬운 분야에 속한다. 이런 직업들은 방대한 지식과 폭넓은 경험과 좋은 두뇌를 요구하는데 컴퓨터는 빠른 프로세서와 큰 메모리, 그리고 빅데이터의 결합으로 이런 것들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고, 자의적 결정보다는 의학서나 법전 등을 따라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인간보다 오히려 더욱 정확하고 신속한 업무 수행이 가능하기까지 하다. 이런 분야에서 기계의 대체 속도가 느린 것은 기술적 어려움보다는 인간이 주는 신뢰감, 혹은 이런 중요한 일들을 기계에게 의존한다는 불안감이나 불쾌함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대체가 일어나는 것도 머지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좋은 직업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염려일 것이다. 기계화에 의한 인간의 실업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당장 산업혁명 당시의 러다이트 운동만 떠올려도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기계에 의해 없어지는 직업 이상으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면서 걱정을 기우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 혁명을 거치며 다시금 대두되는 기계의 인간 대체는 기술의 높은 수준과 인터넷과 글로벌화로 인해 전방위적, 동시적이라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독일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눴다.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한 것, 작업은 창조적인 활동, 행위는 사회적인 활동으로 보았는데 현대 사회의 직업은 대부분 노동 쪽이라 하겠다. 기계의 발전이 노동을 기계의 몫으로 돌리고 인간을 작업이나 행위에 몰두하게 한다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다. 단, 여기에 깔려있는 기본 가정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체해 버려 소득을 앗아가 버린다면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된다. 많은 이들이 알파고를 보며 느끼는 불안감은 이 부분에 기인한다.

기술의 발전은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미래가 공상과학소설에서처럼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당면한 문제는 기계화와 그로 인한 실업이 경제와 삶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 예로, 만약 기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실업 대책 마련에 실패하여 실업이 임계선을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시장 경제의 3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중 가계가 붕괴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팔 곳이 없어져 이어서 붕괴하고 정부도 세금을 걷지 못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이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해 최근 많이 거론하는 것이 UBI(Universal Basic Income)이라는 정책인데 그 기본 골자는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고 국민은 그 돈으로 기업의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시장 경제의 엔진을 다시 돌린다는 것이다. UBI는 일견 불로소득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노동을 기계라는 노예에게 맡긴 결과물을 인간이 가져가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다. UBI는 그 실효성과 구체성을 놓고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중이고 스타트업 육성의 산실인 Y 콤비네이터에서도 자금을 후원해 연구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UBI 정책이 보편적으로 시행되어 경제 위기를 해결한다 해도 경제권이 오롯이 정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는 곧 정부에게 지나치게 큰 권력을 넘겨주게 되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잠재적인 큰 문제다.
교육 역시 크게 바뀔 것이다. 사람이 하게 될 일은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고 기업가, 관리자, 엔지니어, 관료, 엔터테이너, 창작업 등이 인기 있는 직업이 될 것이다. 주로 암기를 통한 지식 축적 여부로 우수성을 가리는 현재의 교육 평가 방식은 실효성을 잃을 것이고 리더쉽, 윤리성, 호기심 같은 새로운 덕목들이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이 세 단어는 자주 붙어 다닌다. 기술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그 힘이 커지고 자칫 선택을 잘못하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알파고를 계기로 인공지능 연구에 힘을 쏟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알파고들이 가져올 세상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